경북 봉화군 춘양면과 물야면에 걸쳐 있는 옥석산의 가을 풍경. ⓒ허태임 제공
2024년 11월29일 발신
작가님과 수목원을 걷고 와서 이 편지를 씁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걸었던 그 길은 백두대간수목원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바깥과 단절하고 저 혼자 즐길 수 있는, 숨겨둔 산책 코스입니다. 가볍게 걷는 길치고는 좀 깊은 곳에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사람보다는 사람 아닌 동물을 더 자주 만나거나 그들의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합니다. 외진 그곳으로 작가님을 저는 꼭 한
릴게임5만 번 초대하고 싶었습니다.
숲 어귀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 올라온 양치식물을 보며 작가님은 참 반가워하셨지요. 뱀고사리와 고비와 관중. 제가 차례대로 이름을 말하자 작가님은 따라 부르셨고요. 깃털을 닮은 고사리 이파리가 바람에 스칠 때 나는 여음 같았어요. 작가님의 발음 기관을 통과해 세상으로 퍼진
릴게임꽁머니 음성 말입니다.
조금 전 멧돼지가 떠난 게 틀림없어 보이던 축축한 구렁 주변에 낙엽이 흩어져 있었습니다. 떨어진 잎 하나를 집어 제가 잘 볼 수 있도록 작가님이 들어 보이셨어요. 마른 잎 뒷면이 은빛을 띠던 버드나무였지요.
파주 호수공원
카카오야마토 에서 제가 보던 버드나무 잎과 왜 다르죠?
그 친구는 심어 기르는 능수버들, 이 친구는 산에 저절로 자라는 버드나무라서요.
작가님의 물음에 답하는 방식으로 (지구라는 한지붕 밑에 사는) 제 반려들을 소개할 수 있어서 무척 좋았습니다. 특
바다이야기프로그램 정 종이나 특정 개체가 아니라 그들이 모여 사는 자연 자체를 저는 짝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님께서 보신 것처럼 저 그렇게 살고 있어요.
수목원의 그 은밀한 숲길을 우리가 걷던 시간은 그러니까 2024년 11월9일 오후 2시였어요. 2년 만이었지요. 작가님께서 진행하시던 ‘책읽아웃’ 녹음실에서의 만
바다이야기다운로드 남 이후로 다시 만난 건.
그간에 작가님은 두 고양이를 잃었습니다. 아픈 그 일을 겪고 나서 이렇게 멀리 나온 건 처음이라고 붉게 물든 신나무 곁에서 말씀하셨지요. 지난 편지에서 외출이 어렵다고 하신 이유를 저는 그제서야 제대로 헤아렸습니다.
우리는 서로 속도를 맞춰 걸으며 이야기를 공백 없이 주고받았습니다. 정해진 주제나 경계 따위도 없었지요. 대화는 주로 사소했고 드물게 거창했으며 결코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날은 언제 그렇게 빨리 어두워진 걸까요?
낙동강 지류인 운곡천이 수목원을 통과하는 구간에 놓인 다리를 건널 때 작가님은 걸음을 멈추고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으셨지요. 멀리 옥석산 협곡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일 겁니다. 울창한 소나무림 틈에 낙엽송과 신갈나무 단풍이 계곡을 타고 흘러내리는 풍경이 화면에 담긴 걸 보며 작가님은 말씀하셨어요.
이 산세는 빙하가 만든 거겠죠.
1만 년도 더 전이었을 거예요. 지금의 꼴을 갖추기 시작한 건. 저는 대답했습니다. 빙하의 확장과 축소는 거듭되었는데, 지금으로부터 약 2만 년 전을 지구의 빙하가 마지막으로 가장 두꺼웠던 ‘최대 빙하기’로 봅니다. 본격적으로 빙하가 물러나기 시작하자 우리 행성은 간빙기에 접어들었지요. 언 땅이 녹자 육지와 해안의 경계는 그 모양이 변했습니다. 우뚝 솟아 있던 거대한 협곡이 수면 아래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홀로세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구석기시대가 끝이 나고 신석기시대로 넘어가던 시기였지요. 지구는 온기를 더욱 품으며 약 6000년 전 해수면이 가장 높은 지점에 이르렀다고요. 그 시기를 현대 문명은 ‘기후 최적기’라고 부릅니다. 인간이라는 종이 문명을 이루게 된 시기이기도 해서 현세의 시작을 이 무렵으로 보는 거죠.
구원의 땅, 백두대간
그때 한반도는 백두대간을 뼈대로 하는 산이 들어서고 해변과 섬들이 지금의 모습과 거의 비슷해졌으리라 학자들은 추정합니다. 그 후로도 지구는 좀 더 추웠다가 좀 더 더워지길 반복했고요. 식물은 각자 선호하는 영토를 찾아 북반구로 나아가거나 남반구로 이동했지요. 끊임없이 찾아온 기후변화와 재난 속에서 식물은 살기 위해 영역을 확장하고 축소하는 전술을 펼쳤습니다.
추웠던 한 시기에 한반도 이남 깊은 곳까지 번성했다가 다시 찾아온 온난기에 한반도 이북까지 북진한 대표적인 북방계 식물이 만병초입니다. 다소 덥던 그 시기에 백두대간의 산정은 선선했다 합니다. 몇몇 식물들이 그곳에서만은 눌러앉게 된 거지요.
그렇게 살아남은 식물을 ‘잔존종’, 그들을 살린 땅을 ‘피난처’라고 제 업계 사람들은 부릅니다. 만병초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백두대간은 구원의 땅 아닐까 싶어요. 예년보다 더욱 강해지는 여름 불볕더위를 냉방장치 없이 자연스럽게 피할 수 있는 장소가 종종 그곳에 있으니까요.
수천 년 전에 땅 위로 올라온 백두대간의 한 조각, 옥석산 협곡을 우리는 함께 건너다보았습니다. 식물 앞에서, 숲속에서, 산 안에서, 장구한 시간을 떠올리며 매번 저는 작아집니다. 더없이 겸손해집니다. 한편으로는 대범하고 담대해집니다. 사소한 것에 얽매일 수 없게 되는 마음. 대자연에서 느끼는 경외의 감정이 그걸 가능하게 한 것이겠지요. 꼬였던 마음이 산맥처럼 너그럽게 펼쳐지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저 외경의 형체를 어떤 이들은 어서 빨리 개발하자고 합니다. ‘지역 소멸’을 막기 위해 관광지를 만들어 더 발전시키겠다 합니다. 작가님 말씀처럼 “인간이 참 빠르게, 많은 걸 가지고 산 때문”에 생겨난 여러 문제를 체감하고 있음에도 말이지요. 개발론자들의 논리가 저는 무용하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지금의 인간 중심적 사고로 인류의 잔존을 허락하는 피난의 땅을 우리 스스로가 제대로 지킬 수 있을까요?
수목원에는 만병초를 보전하는 공간이 있습니다만, 작가님께 아직 안 보여드렸습니다. 만병초가 만개하는 오월에 다시 초대할 생각이에요. 시간을 내주시겠지요?
우리가 따뜻한 커피를 마신 건 고산습원 야외 카페였습니다. 키가 큰 호랑버들 아래 무심히 놓인 나무 테이블에서요. 언뜻 보기에는 너무 닮아 구분하기 어려운 메타세쿼이아와 낙우송이 함께 물들어가는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그 두 나무를 작가님은 정확하게 구분해서 이름 부르셨지요. 아··· 나무와 돈독한 우정을 나누는 분이구나. 저 혼자 그런 말을 했습니다.
팥알 크기의 새빨간 열매가 잔뜩 달린 키가 작은 나무. 거울연못으로 가던 길에 작가님은 그 나무의 이름을 제게 물어보셨어요. 털설구화. 늦봄부터 초여름까지 하얀 꽃이 접시처럼 핀다고 제가 덧붙였지요.
지난 편지에서 말씀하신 이팝나무 이야기를 우리는 또 한 번 나누었죠. 사실 그때 저는 딴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파주 호수공원 작가님의 이팝나무 산책길을 떠올렸거든요. “향기 맡느라 다섯 걸음 걷다가 서고, 세 걸음 걷다가 서”는 것처럼 우리의 산책도 다른 때보다 몇 배로 길어졌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보면서요.
2024년 7월16일 촬영한 응봉산 산불 피해지의 모습. 달뿌리풀이 리좀으로 뻗어가고 있다. ⓒ허태임 제공
한 번은 우리가 달뿌리풀을 오래 관찰했습니다. 들뢰즈의 ‘리좀’ 이야기를 제가 꺼냈지요. 식물이 땅속에서 만든 줄기, 우리말로 땅속줄기 또는 지하경(地下莖)이라고 하는 ‘리좀(rhizome)’을요.
거울연못 앞이었습니다. 옥석산 협곡 풍경이 수면에 되비친다고 수목원 사람들끼리 거울연못이라 부르던 게 그 장소의 이름이 된 그곳에 달뿌리풀 무리가 모여 있었습니다.
“리좀은 시작하지도 않고 끝나지도 않는다. 리좀은 언제나 중간에 있으며 사물들 사이에 있고 사이-존재이고 간주곡이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천 개의 고원〉에서 옮겨왔습니다. 정말 그래요. 리좀은 시작도 끝도 없이 땅속에서 줄줄 연결돼 있으니까요. 리좀은 땅 위로 나오지 않습니다. 지하에서 대지의 편평한 면을 따라 뻗어 나가면서 잎을 틔울 진짜 줄기를 땅 위로 밀어 올리는 식이죠. 뿌리도 줄기도 아닙니다. 그냥 리좀입니다.
땅굴을 파며 수평으로 줄기를 뻗는 능력이 대단한 리좀은 사방팔방 줄기차게 자라 자신의 복제품을 연달아 만듭니다. 리좀은 지상과 지하를 연결하고 식물체와 식물체를 연결하고 식물과 무수한 미생물을 연결합니다. 불리한 여건에서 식물의 삶을 더 단단하게 만들고 다양하게 변화시킵니다.
두 철학자가 말하는 것도 그 비슷한 거겠지요. 타자를 지배하는 존재로서의 주체를 꿈꾸지 말라는, 타자와 수평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끊임없이 변화를 꿈꾸는 존재가 되라는 그런 말.
리좀을 제대로 알게 해주는 식물이 제게는 억새와 물억새입니다. 그 둘은 리좀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뻗는, 서로 다른 종입니다. 땅을 파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억새는 리좀이 똬리를 틀듯이 안으로 동그랗게 말리기 때문에 땅 위에서 한아름 모여 나고, 물억새는 리좀이 횡대로 뻗기 때문에 가로로 줄을 지어 늘어선 모양이니까요. 강강술래 하듯이 빙빙 뭉쳐 나면 억새, 어깨동무하고 횡대로 서 있으면 물억새로 기억하셔도 좋습니다. 홀로 서 있을 때 억새와 물억새는 모두 연약한 존재입니다만, 리좀으로 연결된 후로는 결코 쉽게 뽑히지 않는 강인한 존재가 됩니다.
그러고 보니 수목원에서 작가님께 물억새를 못 보여드렸네요. 이맘때 물억새는 참으로 눈부십니다. 물억새를 포함하여 그 비슷한 혈통의 볏과식물은 대개 씨앗을 보호하거나 멀리 보내려 특수한 털을 달고 있어요. 그 털이 별나게 보얗고, 가을볕에 유난히도 찬란히 부서지는 친구가 물억새입니다.
떠난 고양이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습니다
고양이를 떠나보낸 후 하얗게 세어버렸다는 작가님 머리의 새치를 한 움큼 모은다면, 물억새 다발과 같을 겁니다. 오후 2시에 수목원 방문자센터에서 만나던 순간 저는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가닥가닥 물억새 색으로 물들인 머리를 하고 작가님이 나를 만나러 오셨구나, 하는.
산이 늘 좀 무서웠다던 작가님의 말이 자꾸 생각납니다. 그 말을 들으며 저는 산 아래 숲길로 작가님을 자주 불러야지 싶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걷고 이야기 나누는 사이 작가님께 산이 두렵지 않은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전에 없던 희망도 품게 되었습니다.
신안에 다녀와서 편지를 이어 적습니다. 11월15일 금요일입니다.
신안에는 다리로 연결되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섬들이 꽤 있습니다. 그중 증도라는 섬에서 이틀을 업무차 묵었습니다. 증도는 태평염전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그런데 제가 염전에서 마주한 건 소금밭이 아니라 붉게 물든 함초밭이었습니다. 함초는 ‘퉁퉁마디’라는 해안 식물의 별칭입니다. 맛이 짜다고 짤 함(鹹) 자를 써서 함초(鹹草)라 그 지역 사람들은 부릅니다. 염분에 견뎌야 하는 극한 환경에 적응해 사느라 퉁퉁마디는 다육식물처럼 ‘퉁퉁’하고 선인장처럼 ‘마디’가 또렷합니다. 녹색이던 퉁퉁마디는 가을이 오면 붉게 물듭니다. 서해 드넓은 갯벌을 붉게 물들이는 주인공이지요.
제가 묵었던 숙소는 해안을 따라 걷기 좋은 산책로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수평선 위로 깔리는 낙조를 따라 ‘철학의 길’이라 이름 붙은 구간을 걸었습니다. 키가 큰 곰솔(해송)과 키가 작은 예덕나무와 초화류 억새가 각자 자유롭게 사는 지점과 지점 사이였어요. 서편 하늘과 바다와 함초밭이 맞닿은 풍경은 온통 검붉었습니다. 애도의 색 같았습니다. 작가님이 여읜 두 고양이 생각이 났습니다. 떠난 고양이 이야기를 조금 더 듣고 싶은 마음이 석양처럼 번졌습니다.
물억새는 횡대로 뻗는 리좀 때문에 가로로 줄을 지어 늘어선 모양으로 자란다. ⓒ허태임 제공
제가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올해 나온 어느 문학상 수상 작품집입니다만, 오늘 편지에서는 최근에 인상 깊게 읽은 책을 작가님께 말씀드리고 싶어요. 인류학을 전공하는 친구가 소개해줘서 읽은 애나 칭의 〈세상 끝의 버섯〉(노고운 옮김, 현실문화, 2023)입니다. 작가님을 통해 제가 처음 알게 된 기시 마사히코가 쓴 〈망고와 수류탄〉(정세경 옮김, 두번째테제, 2021)과 성정이 비슷한 책일 거예요. “타인의 이야기를 듣고 또 다른 타인에게 전달한다는 것을 깊이 고민”한다는 점에서요. 무척 탁월하고 매력적인 말입니다.
제가 읽은 책의 저자는 송이버섯의 인류생태학을 연구해왔습니다. 송이를 생산하고 유통하고 소비하기까지의 총체적인 순환과 그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삶을 통해서요. 그는 자본주의의 단면을 날카롭게 짚습니다. 책의 부제는 ‘자본주의의 폐허에서 삶의 가능성에 대하여’입니다. 하청과 외주가 일상화되는 세계, 자본을 쌓으려 (착취당하며 착취하는) 모순된 질서가 있어야 하는 지금의 삶을 지적합니다. 자본에 무한한 자유를 부여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말입니다. 애나 칭은 인류세연구센터의 소장이기도 합니다. 세계 여러 나라 학자들과 생태학과 인류학의 경계 즈음 되는 포스트휴머니즘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반달이 뜬 11월25일 일요일 밤입니다.
가을의 끝에 작가님이 다녀가시고 나니 이제 곧 첫눈이 올 것 같습니다. 첫눈을 떠올리면 저는 다 지나간 일인데 못했다고 후회하는 게 해마다 있습니다.
손톱에 봉숭아 물 들일걸···.
너무 뻔하지요? 어린 시절 추억을 그렇게라도 더듬고 싶은가 봅니다. 그날 수목원에서 화사하게 웃으며 제게 보여주셨던 작가님 손톱의 네일아트는 꽤 상승했겠지요? 손톱 뿌리 쪽에 뜬 반달이 그래서 하얗게 드러났겠지요?
제 개인적으로는 일요일 밤이, 당장 내일 출근할 생각에 정말 괴로운 순간입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내일은 사무실이 아니라 철원 DMZ로 향합니다. 철원에서 파주가 멀지 않다는 걸 생각하며 오지 않는 잠을 자꾸만 청해보는 밤입니다.
춘양에서, 태임
허태임 (식물분류학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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